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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 소식
CCM 소식입니다.!!!
작성자 맹상영
작성일 2001-02-23 (금) 01:56
분 류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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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성가의 역사... 김석균편


-한국 복음 성가 역사를 돌아보며/김석균편-


늘노래, 주숙일, 김민식, 김석균, 전용대, 최미, 최용덕... 이들은 80년대를 풍미했던 한국의 대표적인 복음성가 가수들이다. 90년대에 CCM이란 용어가 등장하면서, 80년대와 90년대를 철두철미하게 구분해 버렸지만(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전통이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으 므로), 80년대에 활동했던 그들 역시도 90년대의 음악인들처럼 동시대의 크리스천 음악인으 로서 그 시대의 언어로 노래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영향력 아래서 청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낸 젊은이들이 90년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90년대와 80년대... 불 과 10여년 밖에 안된는 틈인데도 그 틈이 건널 수 없는 강 이편과 저편의 차이처럼 멀게만 보였던 것은 왜일까? 지난 시대를 돌아봄이 필요한 것은 그 틈을 좁히는 결론을 낳을 것이 며, 더 낳은 미래의 공간으로 나아가는 척도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 자! 80년대를 풍미 한, 그리고 지금도 왕성한 활동으로 노장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자. 이미 만난 바 있는 늘노래와 최미, 주숙일, 김민식을 뒤이어 이번호에서는 김석균을 만나보았다. 80년대의 중심 에서 주옥같은 복음성가를 작곡했던 이 사람의 역사는 80년대 한국가스펠의 역사라 해도 과 언이 아닐 것이다.


“주님의 빚진 자”(83년),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83년),”용서하소서”(86년), “주를 처음 만난 날”(86년), “탕자의 고백”(86년), “사랑의 종소리”(84년), “주님의 빚진 자”(84년), “예수 믿으세요”(86년), “베드로의 고백”(87년), “나는 행복해요”(87년),....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그의 노래는 멈추지를 않고 쏟아졌다. 노래의 보급 역시 음 반과 복음성가집을 통해 전국으로 보급되었고, 어느새 김석균이란 이름 석자는 고전처럼 사 람들의 뇌리에 파고들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엔 ‘김석균이 대체 누구야?’는 질문 을 던져본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석균, 1951년생인 그는 전라도가 고향이다. 5,60년대엔 누구나 그랬듯이 그도 보릿고개 를 넘으면서 어렵사리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음악과 문학에 대한 남다른 소질 은 그를 대학에선 국문학을 전공하도록 이끌었고, 아마추어 가수로서 대중가요에 몰두하도 록 하였다. 대학생 아마추어 가수로 8년간이나 활동한 바 있는 그가 회심한 것은 78년. 고등 학교 국어선생이었던 그의 나이 스물 여덟의 일이다.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성전 뜰만 밟았다. 오랫동안 교회 를 다니고는 있었으나 마음은 늘 황폐하였고, 공허하였다. 이런 내 가슴에 그리스도가 찾아 온 것이다”
복음은 한 사람의 삶을 완벽하게 변화시켰다. 이 사람의 세상 적인 가치관은 예수그리스 도를 중심으로 한 가치관으로,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이생의 목적은 주님께 영광 돌리겠다는 하늘의 소망으로 바뀌었다. 대중가요를 부르고, 대중가요를 만들던 그의 음악적 인 재능은 가스펠을 부르고, 가스펠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노 래들이 ‘영원히 주와 살리’, ‘주를 처음 만난 날’, ‘금보다도 귀하다’, ‘주님의 빛진자’ 등이다. 이제, 막 회심한 그의 첫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노래들이다. 이 노래들을 가지고 1집 음반을 만들었다.




1집앨범
같은 교회를 다니던 전충구와 함께 그는 듀엣으로 교회 집회를 다녔다. 지금처럼 초대하 는 교회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을 앨범 없이 활동하고 있었던 터 에 그는 윤용섭 목사를 만났다. 윤용섭 목사는 ‘주님 나를 부르셨으니’를 만든 작곡자로서 대중가요계에서 활동한 유명한 연주자인데, 회심하여 크리스천이 된 이후로 교회 간증집회 활동과 작곡 활동을 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윤목사님의 초청 간증집회가 우리교회에서 있었는데, 그 날 충구와 내가 ‘금보다도 귀하 다’를 듀엣으로 불렀다. 우리 노래를 들으시더니 음반을 한번 만들어 보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닌가? “
교회의 후원금과 빛으로 얻은 돈을 합하니 200만원. 그 200만원을 가지고 앨범작업에 착 수하였다. 스튜디오는 은성음반 부평공장에 마련된 간이 스튜디오로 정했다. 나름대로 스튜 디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찾아간 이 곳은 스튜디오라기 보다는 창고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정도로 열악하였다. 하긴, 앨범을 만들기 위한 정식 스튜디오가 아니라, 해외 라 이선스 앨범을 국내에서 찍어내기 위한 시스템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녹음기재도 형편없 었고, 믹싱을 따로 할 수 가 없는 형편이어서 동시녹음으로 갔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오르간 주자와 코러스까지 10여명의 사람들이 하루종일 녹음에 매 달렸다. 창고라서 소리도 울리고, 음악만 크고 노랫소리가 적어서 소리를 질러대야 하는 열 악한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녹음에 참여한 사람들의 감격은 남달랐다.
“처음 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말도 못할 감동과 감격으로 녹음을 하였다. 눈물로 얼룩진 앨 범을 만든 것이다.”
코러스는 산돌여성중창단.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팀으로서 79년부터 83년까지 활동하 였다. 1집 앨범이 세상에 나온 것은 82년 말이다. 앨범이 나오긴 했으나, 기독교 음반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여서 주로 집회 다니면서 판매하는 정도였다. 기독교백화점이 없어서 성구를 파는 성구사에서 음반을 판매하였으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때가 아니라서 판매 는 저조하였다. 그러나, 조용히 그의 노래는 한국교회에 퍼져나갔다.


그의 이름이 더욱 알려진 것은 83년부터이다. 이 때 그는 두사람은 만났다. 한사람은 손영진 이고, 한사람은 전용대이다. 손영진을 만난 것은 그의 대학 후배의 소개에 의해서다. 극동방 송경연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준비하던 손영진에게 김석균은 2곡을 선사하였다. “어디서 들 리는가”와 “사랑이 식어진 곳”이었는데, 출전한 곡은 “어디서 들리는가”였다. 이 곡으로 손 영진은 그 해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였다. 금상 수상자보다도 83년 대회의 히로인은 단연 손영진이었다. 전용대와의 만남은, 입소문으로 김석균을 알게된 전용대가 음반을 만들기 위해 김석균을 찾 으면서 맺어졌다. 전용대가 받은 곡이 “주를 처음 만난 날”,이다. 이 곡은 “주여 이 죄인이” 와 함께 전용대라는 사람을 일약 가스펠 계의 혜성으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김 석균이란 이름도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가 그 동안 만든 곡 수백 곡에 이른다. 아직도 발표하지 않은 곡을 다수 가지고 있다하니, 그의 왕성한 창작활동이 부러웁다.
“사랑의 종소리”, “돌아온 탕자”, “나는 행복해요”, “용서하소서”, “금보다도 귀하다”, “쓴잔”, “눈물의 참회록”... 이 곡들은 대부분이 80년대 초반에서 80년대 말까지 만든 곡이다. 90년대 에 들어서도 여전히 그는 많은 곡들을 발표했지만 상황은 80년대를 따를 수가 없었다.
“80년에 창작곡이 많지 않았으니까. 90년엔 워낙 많은 곡이 쏟아졌고,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기 때문이지. 80년엔 어느 복음성가집을 펴더라도 김석균이고, 주숙일이고, 김민식이 었으니까. 그 당시엔 집회에 가면 사람들이 넔을 잃고 우리들을 바라보았지. 찬양이 귀했던 시대여서 은혜도 더 많이 받았고...”


신학은?
80년 중반부터 목사님들이 ‘신학’하라고, ‘목사’ 되라고 많이 권유하였다. 찬양사역도 목 회자의 길이라고 생각했고, ‘나 아니고도 다른 사람들이 많은 걸...’ 하면서 흘려버렸다. 그 러다가 96년에 결정을 내렸는데, 그 동기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론과 실재를 현장에서 후배 들에게 전수해야 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밝고 있다. 그 과정을 마치면, 강단에서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다. 음악사역이 무엇인지를 가 르쳐주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이 왜 나를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셨는지... 그 가르침의 경험이 좋은 밑바탕 이 될 것 같다.


1세대에 대한 평가는?
완성된 음악을 만들고 애를 쓰던 애쓰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사함으로 감당했던 사람들이 었던 것이다. 그 시대의 우리들은 배가 고팠고 인기가 없었다. 현장에서 설움도 많이 받았지 만, 너무나 감격스럽고 기쁘게 그 사역을 감당하였다. 하나님을 감동시키기 위해 열심히 뛰 고, 노력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해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첫 음반을 지금 들으면 나조차도 민 망스럽다. 그러나 그 음악을 듣고 감동받고 은혜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 다. 회개하고, 눈물을 그리고... 그 음악에 담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순수한 열정이 순수 함을 추구하던 때묻지 않은 사람들의 가슴에 흘러 들어간 것이다.

취재/김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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